- 세월호 교실
368명이라고 했다가 164명이라고 했다. 며칠 뒤 또 174명이라고 하더니 얼마 안 돼 172명이라고 했다. 배가 기운 이후 일곱 번 이상 번복된 거였다. 사고 첫날, 외국 언론에서 조난자의 수온별 생존시간을 따져보는 사이 한국에서는 사망시 보험금을 계산했다. 사람들은 권력이 생명을 숫자로 다루는 방식에 분개했다. 한쪽에서는 ‘재난의 계급화’나 ‘책임의 외주화’와 같은 말이 돌았다. 기업과 정부는 세월호에 탑승한 인원은 파악하지 못했고, 지금도 바다 속에서는 숫자조차 되지 못한 이들이 차갑게 굳어가고 있다.
(김애란, 기우는 봄, 우리가 본 것, p. 10)지난달 16일, 언제 침몰할지 모르는 배 안에서 한 여고생은 불안을 떨쳐내려는 듯 친구에게 밝은 목소리로 물었다. “기울기는 어떻게 구하더라?” 그러곤 그 농담을 끝으로 다시는 이곳에 돌아오지 못했다. 요즘 나는 자꾸 저 말이 어린 학생들이 우리에게 마지막으로 건네고 간 질문이자 숙제처럼 느껴진다. 이 경사(傾斜)를 어찌하나. 모든 가치와 신뢰를 미끄러뜨리는 이 절벽을, 이윤은 위로 올리고 위험과 책임은 자꾸 아래로만 보내는 이 가파르고 위험한 기울기를 어떻게 푸나.
(김애란, 기우는 봄, 우리가 본 것, p. 10)“시정연설은 35분가량 진행됐습니다. 가장 많이 등장한 단어는 '경제'였습니다. [박근혜 대통령 : 기초가 튼튼한 경제를 만들고 창조경제를 뿌리내려 우리 경제를 역동적인 혁신 경제로 전환시키고….] 그러나 올해 한 해 가장 큰 이슈였던 '세월호'는 단 한 번도 말하지 않았습니다. 대신 ‘안전’이라는 말을 여러 차례 언급했습니다. 박수는 연설하는 동안 모두 28차례 나왔습니다.”
이름을 들었다. 학생, 실종자, 희생자, 승객이라 불릴 때와 달리, 그들의 가족이 늘 불렀던 방식으로, 본명으로, 별명으로 불리는 걸 들었다. 가족들로서는 살면서 만 번도 더 불러본 이름이었을 거다. 그 이름에 담긴 한 사람의 역사가, 시간이, 그 누구도 요약할 수 없는 개별적인 세계가 팽목항 어둠 속에서 밤마다 쩌렁쩌렁 울렸다. 낮에도 새벽에도 아침에도 울렸다.
(김애란, 기우는 봄, 우리가 본 것)희생자 가족 중 누구도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의 이름이 그곳에서 그런 식으로 불리게 될지 몰랐을 거다. 뉴스를 본 많은 이들이 희생자 이름 위에 자기 이름을 덧댔다. 혹은 자기 자식 이름을 포개며 같이 울었다. 중학생들은 처음엔 군대에서, 그뒤엔 대학에서, 최근엔 고등학교에서 큰 일이 났으니 ‘다음은 우리 차례’라 자조했다. 모두 공적인 공간에서 일어난 인재였다. 사람들은 앞으로 그 빈칸에 누구의 이름이 들어갈지 확신하지 못했다.
(김애란, 기우는 봄, 우리가 본 것)피해와 희생을 집계하고 계산하여 보상금과 지원금을 지급함으로써, 우리 사회는 세월호에 탄 사람들을 위한 ‘평균적’ 정의를 구현하고자 한다. 이와 함께 우리는 그들의 이름을 부르고 얼굴을 그림으로써, 평균할 수 없는 개인의 삶을, “그 누구도 요약할 수 없는 개별적인 세계”를 확인하고 기억하고자 한다. 이처럼 다양한 방식의 사회적 행위를 통해 우리는 계속해서 물어야 한다. “세월호에는 누가 타고 있었는가?”
세월호, 누가 타고 있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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