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사건의 진상을 밝히고 책임을 가리려는 정치적, 사회적, 법률적 과정과 더불어 꼭 필요한 것은 이 사건의 의미를 '이해'하려는 노력입니다. 세월호는 도대체 무슨 사건인가? 이 사건은 나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가? 이 사건은 한국 사회에 대해 무엇을 말해주는가? 우리는 이러한 질문들을 각자의 교실로 가져가 학생들과 함께 얘기해 보자고 제안합니다.
세월호교실은 대학교(또는 고등학교) 교실에서 세월호 문제를 가르치고, 배우고, 토론하려는 분들을 위한 수업계획안을 만들고 공유하는 온라인 프로젝트입니다. 전공분야나 담당과목과 상관없이 학생들과 함께 세월호에 관해 이야기하는 자리를 가지려는 분들이 세월호교실 사이트에서 토론을 위한 질문과 자료를 얻고 이를 더 발전시켜 교육 현장에서 구현해주실 것을 기대합니다.
‘세월호교실’은 여러 대학의 강의실에서 학생들을 만나는 선생님들이 모여 “도대체 세월호를 어떻게 가르쳐야 하는가”라는 물음을 던지는 것으로 시작했습니다. 실시간으로 전개되는 비극을 함께 목격하면서 우리는 학생들 앞에서 할 말을 찾지 못했고, 그러면서도 무엇이든 말해야 한다고 느꼈습니다. 또 학생들의 목소리를 들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어떤 학문 분야도 어떤 이론도 세월호를 온전하게 설명할 수 없을 것입니다. 우리는 다만 어지럽게 쏟아지는 자료를 모으고 정리하여, 읽을거리와 토론거리를 찾아내고 제안할 뿐입니다. 우리가 이미 알고 있던 지식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우리도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일에 대해 학생들과 같이 질문하고 이야기하자고 제안하는 것입니다. 정답은 없고 물음만 있을 뿐인 수업을 해보자는 것입니다.
1965년 미국의 미시건 대학에서는 인류학자 마샬 살린스를 포함한 여러 교수들이 베트남전을 반대하는 학생들과 함께 밤을 새워 강의하고 토론하는 ‘티치-인’(teach-in)을 진행했습니다. 이는 학생들의 반전 행동에 대한 연대의 표시이자 교실 안에서 못다한 토론을 교실 밖으로 이어가려는 교육적 행위이기도 합니다. 이후 여러 대학들에서 전쟁, 환경, 여성 문제 등에 대한 ‘티치-인’이 행해져 왔습니다. 이는 학생과 선생 모두를 충격과 고민에 빠트리는 사건 앞에서 함께 질문하고, 함께 토론하고, 함께 나아가려는 시도입니다. ‘세월호교실’은 우리 선생들도 학생들과 똑같은 슬픔과 분노와 좌절을 느끼고 있으며 우리 모두 함께 길을 잃었다는 것을 고백하면서 대화를 나누는 자리입니다.
근래에는 급박하고 중요한 사안에 대해 교육자들이 인터넷을 활용하여 공동으로 대응하는 사례가 많아졌습니다. 2011년 3월 일본에서 지진과 쓰나미와 후쿠시마 원전사고의 3중 재난이 일어났을 때, 과학기술, 의료, 환경의 역사학, 사회학, 인류학을 연구하는 학자들이 모여 ‘Teach 3.11’(http://teach311.org)이라는 웹사이트를 열었습니다. 여러 국적의 편집진이 많은 필자, 번역자들의 도움을 받아 운영하는 이 웹사이트는 동일본 재난에 관한 수업에서 활용할 수 있는 책, 논문, 다큐멘터리 등의 자료를 영어, 한국어, 중국어, 일본어, 인도네시아어 해설과 함께 정기적으로 소개하고 있습니다.
또 2014년 8월 미국 미주리주 퍼거슨에서 18세의 흑인 청년 마이클 브라운이 백인 경찰관이 쏜 총에 맞아 사망하고 이것이 인종갈등과 대규모 시위로 이어졌을 때에는, 인종과 인권문제를 연구하는 학자들과 교육자들이 함께 ‘퍼거슨 수업계획’(#FergusonSyllabus)을 만들고 공유했습니다. (http://www.theatlantic.com/education/archive/2014/08/how-to-teach-kids-about-whats-happening-in-ferguson/379049/) 뉴욕타임스의 교육 블로그에서도 퍼거슨에서 벌어진 일을 수업에서 어떻게 다룰 수 있을지를 자세하게 소개하고 독자와 교육자들의 의견을 공유했습니다. (http://learning.blogs.nytimes.com/2014/09/03/the-death-of-michael-brown-teaching-about-ferguson/?_r=0)
‘세월호교실’ 또한 인터넷을 통해 세월호 수업을 위한 자료를 정리하고 수업계획안을 만들어 공유하려는 프로젝트입니다. 세월호교실 편집위원회는 각자 자신이 교실에서 진행한 수업 슬라이드를 인터넷에 공유하는 방식이 아니라 처음부터 누구나 가져다가 변형하여 쓸 수 있는 수업안을 만들어서 공유하려는 목표를 세웠습니다. 인터넷의 장점을 활용하여 세월호 관련 자료를 최대한 많이 제공하고 이를 바탕으로 토론을 진행할 수 있는 수업을 만들고자 했습니다. 그런 점에서 ‘세월호교실’은 온라인 프로젝트인 동시에 오프라인에서의 교육 활동을 적극적으로 지원하기 위한 시도입니다. ‘세월호교실’을 통해 온라인과 오프라인 모두에서 세월호에 대한 토론이 더 활발해지기를 바랍니다.
‘세월호교실’의 첫 기획회의는 2014년 4월 29일 서울역 근처에서 열렸습니다. 세월호 관련 언론보도 및 각종 자료를 수집하고 정리하는 것부터 시작하기로 의견을 모았습니다. 여러 학생들이 수업에 쓸 만한 자료 아카이브를 만드는 일을 맡아 주었습니다. 이후 여러 차례의 세미나와 편집회의를 거쳐 수업계획안의 형식과 내용을 논의했습니다. 편집위원들을 포함하여 세월호 수업에 관심이 있는 여러 선생님들이 수업안을 작성하고 함께 수정, 보완하는 과정을 거쳤습니다. ‘세월호교실’의 취지에 공감하는 IT 개발자와 디자이너들이 수업계획안을 웹사이트로 만들었습니다. 평소에 서로 다른 주제를 연구하던 학자들이 모여 세월호라는 공동의 주제를 놓고 협력하고, 또 학계와 IT 업계에 있는 사람들이 처음 만나 협력하는 일은 그 자체로 좋은 배움의 경험이기도 했습니다.